한 청년의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를 처음 시작한 한 청년입니다.

저에게는 빌딩청소하며 보내던 가난한 대학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절에 반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 편지는 반크 사이트를 방문하시는 분들, 특히 청소년과 청년들이 반크가 걸어가는 꿈은 바로 여러분 자신들의 꿈이란것을 알게 하기 위해 반크가 걸어온 이야기를 해드리고자 합니다.

그래서 반크의 꿈이 여러분의 꿈이 되어 대한민국의 꿈으로 더 커지실 소망합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는 1999년 개인 펜팔 사이트로 출발했습니다.
출범 당시의 예상과 달리 이 사이트는 청소년 회원들의 열정적 참여로 성장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반크를 세계인에게 한국을 홍보하는 민간 외교단체로 떠올립니다. 특히 TV 공익광고에 등장한 덕분에 반크는 한국에 대해 잘못 기술한 외국 교과서나 세계지도, 백과사전을 수정시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반크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단체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한 반크의 진정한 평가는 다른 관점에 있습니다. 남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자신만의 남다른 탁월함이 있음에도 부족하고 사회적 기대와 요구에 종속적이었던 한국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평범한 삶이 반크 활동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만나게 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제가 바로 그 산증인입니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반크 활동을 통해 저는 저만의 어떤 특별한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가치에 내 인생 전부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 스스로의 삶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행동의 변화까지 연결되는 삶, 살아 숨쉬는 생명력 있는 삶을 살며 누군가를 위한 길을 만드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반크 활동을 통해 한국의 청년들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가치를 발견하면 자신의 인생을 넘어 대한민국을 변화시키는 또다른 기회로 확장이 되어 대한민국 미래까지 바꿀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를 시작한 지 1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반크 사이트를 처음 만들었을 때 저는 일본어를 전공하는 야간대학 4학년이었습니다. 우연히 들은 한 교양과목이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공무원 연수원, 군부대, 교육청, 교육기관으로부터 특강 제의를 받아 약 5만명이 넘는 교사, 청소년, 대학생, 공무원, 군장병들에게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를 하다보니 청중들은 반크라는 단체보다는 반크를 처음 만든 저에 대해서 많이 궁금해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글을 작성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이 편지를 접하는 한국의 청소년들과 청년, 해외 동포들이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되돌아보면 10여년동안 반크를 하면서 출판사, 방송사 등 직장을 다섯번 옮겼습니다. 흔히 말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는 물결에 저도 휩쓸렸습니다. 2001년에는 제가 원하던 직장(방송사)에 취업했습니다. 반크를 운영중이어서 직장 상사가 없을 때 반크 업무를 했습니다.

어느날 여자 후배가 말했습니다.“ 선배는 왜 상사들이 자리를 비우면 업무시간에 다른 일을 해요?” 그 말을 듣고 1주일 동안 멍했습니다. 저는 먹고살기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했고, 일을 하면서도 딴전 부리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었습니다. 좋아서 하는‘ 다른 일’이라면, 아예 전업으로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물론 집에서는 반대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으니까 더더욱. 하지만 설득했습니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반크에 매진했습니다.

 

대학 4학년 무렵. 외환위기 때문에 온통 난리였습니다. 바로 앞 학번(92학번) 선배들이 취업에서 전멸했습니다. 그때 제가 다니던 야간대학은 남들이 말하는 명문대학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낮에는 어느 빌딩 관리실에서 일했습니다. 35만원을 받았고, 그 돈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취업이 어렵다고 하니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이후가 두려웠습니다.

토익공부가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빌딩에서 청소를 하면서도 죽어라 토익공부를 했습니다. 매달 토익점수가 10점씩 오르면 그게 제 인생의 행복그래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신데렐라를 꿈꾸었습니다. 빌딩을 성실히 관리하면, 이 빌딩에 있는 한 회사 CEO가 그 성실성을 높이 사서 취업시켜주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왜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명문대를 다녔으면 달랐을까.

다른 사람 탓만 하며 신데렐라를 꿈꾸었습니다. 토익점수 그래프를 보면서. ^ ^

그때 교양 수업 가운데 인터넷 활용과목이 있었습니다. 그 수업이 삶을 바꾸었습니다. 한 학기동안 홈페이지를 만드는게 과제였습니다. 어떤 홈페이지를 만들까 궁리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외국의 동아시아학과나 한국학과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전자우편을 썼습니다. ‘한국과 한국어에 관한 정보가 없으면 연락을 달라. 내가 검색해 정보를 드리겠다. 그 학과 학생 중에 한국 친구를 사귀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알려달라. 1대1로 소개하겠다.’ 이런 편지를 전 세계 대학 1000여군데에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답신이 100통 가량 왔습니다. 외국의 어느 국립대 한국어과 교수는 학과 학생들이 온라인 자매결연을 맺고 싶어한다면서 대학생 100여명의 프로필을 보내왔습니다. 외국 국립대 교수가 평범한 야간 대학생에게 말입니다.

제 주변 친구들이 환호했습니다. 저를 통해 외국학생과 교류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저는 이 사이트가 내 취업에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금세 히트하고 제가 대학생 스타가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방문객 숫자가 순식간에 늘지 않았습니다. 안되나보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수천명이 몰려왔습니다. 대부분 청소년이었습니다.‘ 뭔 일이래?’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2002년 한일 월드컵때 영어교사가‘ 해외펜팔을 통해 자기 고장과 한국을 알려라’하는 수행평가 숙제를 내준 것이었습니다. 그때 포털에서‘ 해외 펜팔’이라고 입력하면 반크가 맨 앞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청소년이 몰려온 것입니다.

저는 졸지에 수행평가 숙제‘ 마담뚜’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어떡하나 싶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외국 학생은 주로 대학생인데…. 연결을 안해주면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여기고 항의할텐데…. 그래서 나라별로 펜팔사이트에 가서 프로필을 긁어왔습니다. 일종의 도둑질을 해온 셈이지요. 저의 도둑질 덕분에 청소년들이 외국 펜팔과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고 아이들이 매우 신기해했습니다.

 

일이 또 늘었습니다. 아이들이‘ 영어가 서투르니 번역서비스를 해달라’고 영어 도움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토익 공부를 한 정도면 할 수 있는 단순한 영어였습니다. 주변 대학생들과 함께 영어 번역 서비스를 했습니다. 청소년이 펜팔을 신청하고 한글로 편지를 쓰면 대학생들이 번역해주는 소박한 사이트가 반크였습니다. 반크는 청소년들에게 인기있는 펜팔사이트로 등장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토익 점수에 목매던 내가 당장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로
관심이 바뀌었습니다. 저의 작은 노력으로 아이들이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니 기뻤습니다.

저는 빌딩청소를 하면서 어느 CEO가 내 모습을 봐주기를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교류하는 모습을 보면서 60억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네가 맞겠니? 교과서가 맞겠니?”

아이들은 해외의 펜팔에게 한글과 한국을 알리고 싶어했습니다. 마치 한글 홍보대사처럼. 그래서 게시판 카테고리를 나누고, 자신들이 홍보한 것을 올려 다른 학생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습니다.
사이버 외교관처럼. 수능영어만 고민하던 친구들이 한국 홍보를 위해 영어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이트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제보가 쏟아졌다. 외국 교과서, 홈페이지 등에 독도와 동해 표기가 다케시마와 일본해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시험문제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 이름을 일본해라고 쓰지 않고 동해라고 썼더니 오답으로 처리되었다는 사연도 올라왔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유학간 여학생이 이에 항의했더니 교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가 맞겠니, 교과서가 맞겠니?” 그 여학생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그 교과서를 저더러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작은 펜팔사이트 운영자에게 말입니다. 토익 공부를 하다보면 제품의 하자를 지적하고 이를 시정해달라는 내용의 예문이 많이 나옵니다. 그 예문을 참고해가며 관련 자료를 첨부해 편지를 썼습니다. 답변이 왔습니다. 그 답변이 내 심장에 박혀있습니다.

“관행적으로 일본의 표기를 써왔다.
여러 학자들과 회의를 해보니 우리 잘못이었다. 시정하겠다”라고.

그 답변을 사이트에 올렸더니, 펜팔들이 각국의 세계사 교과서를 누가 썼는지 정보를 올렸습니다. 다시 1000여개 교과서 회사에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청소년들이 해외 펜팔을 통해 교과서 내용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일개 펜팔 사이트가 해외 학자와 회사를 설득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반크가 주목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사가 우리 활동을 공익광고로 만들어 방송할 정도였습니다. 올해 나온 외교부 조사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지도 사이트 중에서 10년전에 세계지도에서 일본해라고 표기한 것이 97%, 동해가 3%를 차지했는데, 올해는 동해라고 표기한 게 29% 정도 됩니다.

저는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의 모범 샘플이 아닙니다. 질질 끌려다니다 뒷부분에 와서 수습을 한 경우입니다.

 

일본해라는 표기가 97%이고, 동해라고 표기된 게 3%였던 것처럼,

내 인생에서 97%는 취업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이었습니다.

그것에 치여 살았습니다.

어떤 우연한 기회에 나는 내 안에 있던 3%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키워왔습니다.

제 작은 실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보다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바꿀 수 있는 지를 아는 일입니다. 수능점수를 잘받아 소위 한국에서 누구나 다 인정하는 명문대를 입학하면 행복할까요?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에 갇혀 취업문만 통과하면 그 사람은행복한가요?

대기업 문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와 다른 미래를 꿈꾸는 데
한국의 청년들과 청소년이 자신의 인생을 넘어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생명력있는 삶에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한국 청년들이여 눈을 잠시 감아보세요. 그리고 3가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한국이 어디에 있고, 한국은 어디에서 왔으며, 앞으로 한국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봅시다.

첫째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세계지도 속에서 한국의 위치를 찾아보면 됩니다. 세계지도에서 한국의 청년들은 아시아, 동북아시아, 그리고 한반도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를 결정하는 한반도를 가리키는 세계지도에 우리의 동해바다 대신 “일본해” 바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제 한국 청년들은 선택해야 합니다. 일본해 바다로 방치할것인지, 아니면 동해바다로 회복시킬지.
회복시키겠다는 마음의 먹은 한국 청년들의 행동으로 최초 3%였던 동해바다는 29% 이상으로 확장이 되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청년들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일본해 옆에 있던 한국, 즉 Near Japan, Near Japan sea 를 벗어나 새로운 한국의 위치를 세계 지도속에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한국청년들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안 다음은 이제 한국이 어디에서 왔는지, 즉 한국의 5천년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형성해야 합니다. 세계 교과서에서 한국은 국가 시작부터 중국의 식민지에서 시작이 되어 오랜 기간동안 중국의 식민지, 속국 생활을 해왔으며 19세기 들어 일본이 중국의 속국이었던 한국을 도와주기 위해 합병했다는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제 한국청년들은 선택해야 한다. 한국이 중국의 속국의 역사였던 왜곡된 내용을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올바른 한국의 역사를 회복시킬 것인지. 회복시키겠다는 마음을 먹은 청년들의 행동으로 현재 외국의 교과서와 세계 정보사이트에 올바른 한국의 역사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청년들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중국의 속국이었던 한국, 즉 Near China history 을 벗어나 자랑스러운 한국의 역사를 세계 역사책속에 회복시켜 나가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2010년 한국은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뀐 나라로 세계역시에 기록이 되었습니. 반세기만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가장 부자인 나라들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100년전 나라를 일본에서 강제로 빼앗겨 식민지가 되고, 60년전에는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해서 온 나라가 폐허가 된 한국을 아는 세계인들은 기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버지 세대의 땀과 노력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부자간 된 나라로 바뀐 것으로 한국 청년들은 만족해야 합니까? 이제 한국 청년들은 선택해야 합니다. 세계속에 부자 나라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가슴속에 어떤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심어가고 싶은지를.

세계인들을 섬기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꿈을 품은 한국청년들의 열정은 오늘날 한국이 세계 제3위의 자원봉사 파견 국가라는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청년들은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지구촌을 변화시키는 민족, 즉 잘 사는 나라는 넘어 60억 세계인들에게 희망이 되는 한국의 미래를 그려나가야 합니다.

끝으로 제게 있어 동해바다를 지키게 했던 3%의 가치는 태평양을 넘어 지구촌을 돌고 돌아 바닷물을 썩지않게 만드는 염분의 양 3%와 하나가 되어 만나게 됩니다.

저는 장차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고자 하는 3%의 한국청년들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창출)하는데 도전이 되고 영감이 되는 사람이 되길 꿈꿉니다. 그래서 한국이 어디에 있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방황하는 수많은 한국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염분이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3% 염분이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3%의 한국 청년들만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자각하면 21세기 대한민국은 아시아와 지구촌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여러분의 꿈과 청년의 삶을 반크의 꿈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해 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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